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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코리아 대표이사 회장''아쿠쉬네트컴퍼니 회장' 윤윤수 회장님

 

 

 

 

 

 

 

 

 

 

 

 

 

 

 

 

 

 

 

 

 

 

 

 

 

대한항공 4,400,000만 마일리지
한국 최초 스포츠 브랜드 설립
손연재하면 생각나는 브랜드회장

 

돈버는 마술사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회장
아쿠쉬네트컴퍼니

휠라코리아 윤윤수


1945년 해방때 태어난 윤회장은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마저 고교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서울고교시절 의사가 되길 소망했지만 서울대 의대에 연거푸 낙방했다.

삼수끝에 진로를 바꿔 들어간 대학 생활도 신통치 않았다.

그는 휴학계를 내고 도망치듯 선택한 카투사는 그에게 새로운 자산을 만들어 주었다. 바로 영어를 잘 하게 된 것이었다.

1974년 미국에 첫 방문을 하여 해운 공사에 입사했다.

당시 그가 본 미국은 경이로워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무역맨이 되기로 했다.

JCPenny라는 미국의 종합 유통회사에 입사하여 한국에서 5년간 신발과 가방 무역을 맡았다.

무역업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 그는 37세 신발 제조업체 화성실업에 수출담당 이사로 스카우트 된다.

30대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또 한번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온다.

ET만화가 유행하고 나서 ET인형을 제작하기로 했는데 해외에서 팔린 ET인형의 상당량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개념조차 전무했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발목이 잡히고 만다.

6컨테이너치의 ET인형을 샌프란시스코 항구까지 가서 불살라야 했다.

의욕이 먼저 앞섰던 시절.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10년 직장생활을 끝낸다.

실업자가 된 윤회장은 사업 구상 차 미국을 찾았다. 그때, 미국 출장 때 마다 인상 깊게 봐온 휠라가 인상 깊게 꽂혔다.

휠라의 라이선스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미국 사업권은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간 상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회는 왔다.

당시 미국 사업권자가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바로 달려갔다.

더욱 유리한 조건의 재정 공급권을 준 대신 OEM권한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한 달 넘게 뉴욕에 머물렀다. 협상은 성공적이었고, 납품한 신발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 일로 그는 휠라 코리아의 사장으로 발탁. 샐러리맨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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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인재교육

등록일2015-08-20

조회수1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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