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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평의 작은 가게로 시작해 세계 최대의 중국음식점 주인' 남상해 회장님

 

 

 

 

 

 

 

 

 

 

 

 

 

 

 

 

 

 

 

 

 

 

 

11평의 작은 가게로 시작해 세계 최대의 중국음식점 주인

머슴을 간 큰형과 채독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둘째형

100여개 이상의 회장직

남상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형제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아 열 살배기 소년이 서울로 상경했다.


창신동 땅굴에서 생활하며 신문팔이, 구두닦이, 물장수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을 마치고 땅굴에서 쓰러지는 밤이면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쥐약을 사서 먹으려는 순간‘다다시야(남상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절망 대신 희망을 품게 되었다.  

남상해는 명동의 한 중국집에서 짜장면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그날 짜장면을 처음으로 돈 주고 사먹은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
너무 맛있어서“음식 값 대신 일하고 싶다”며 간곡히부탁했다고 했다.
밤중에 호롱불을 켜고 한글을 깨치려했던 열정이 중국집 주인을 감동시켰고,
그 덕분에 그는 바쁜 저녁시간에도 야학을 다닐 수 있었다.

이후 약 10여 년간 일하면서 기술을 익혔고,
국제관광공사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 워커힐 호텔조리부장이 됐다.

그의 서른의 나이에 11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그의 이름을 내 건 ‘동승루’를 창업했다.

동승루에서 시작된 그의 성공은 신해루, 열빈, 다리원까지 이어졌고,
1987년 세계 최대의 중국 요리 전문점 하림각을 열었다.

남상해은 ‘동승루’시절부터 종업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쁠 때일수록 손님들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989년 종로구 새마을 지회장을 맡으면서 소년소녀 가장 돕기, 무의탁 노인 돕기 등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2010년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2010년 새마을운동중앙회 고문, 2012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부의장이 되었다.

 “나는 억울하기 싫어서 현실에 맞섰다. 잠들 때면 배고픔에 쪼그라진 배를 안고 머릿속에 큰 기와집을 지었다.
그 안에서 내가 배달일을 하는 중국집보다 더 큰 음식점의 주인이 돼보기도 했고, 훌륭한 학자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대통령이 돼 있기도 했다”며 좌절하지 않고 높은 이상을 추구하며, 꿈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인생은 끝까지 달려보지 않으면 결과를 알 수 없는 레이스
꿈과 희망을 놓지 않는 한 누구나 위대한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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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인재교육

등록일2015-08-10

조회수16,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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